수출 제조기업 219개사 중 85.9%가 지난해보다 영업이익률이 떨어졌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오른 원가를 판매가에 20%라도 반영한 곳은 다섯에 하나뿐이었고, 32.9%는 한 푼도 못 넘겼습니다(한국무역협회, 2026년 7월 26일).
가격을 못 올린 이유를 협상력 부족으로만 읽으면 절반만 본 겁니다. 이 주문 한 건에서 얼마가 남는지 모르는 회사는, 얼마를 올려야 하는지도 말하지 못합니다.
단위경제가 실시간으로 안 보이는 건 데이터가 늦어서가 아닙니다. 계정과목 체계에 '단위'라는 축이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위경제 분석이 막히는 지점은 데이터 속도가 아니다
▍장애물 1위는 도구가 아니라 사일로였습니다
딜로이트가 매출 10억 달러 이상 북미 CFO 200명에게 물었더니, 원가관리를 가장 우려되는 내부 이슈로 꼽은 비율이 52%로 1위였습니다. 반년 전 3위(47%)에서 올라온 자리입니다. 흥미로운 건 그 다음 질문입니다. 원가관리의 최대 장애물로 46%가 부서 사일로와 자율적인 사업단위를 꼽았고, 낡은 도구·기술은 39%로 그 뒤였습니다(딜로이트 CFO Signals 1Q 2026, 2026년 4월).
사일로가 원가관리를 막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물류비 12억을 어느 제품에 얼마씩 붙일지 물류팀과 영업팀이 합의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숫자를 못 뽑는 게 아니라, 그 숫자를 누구 앞에 놓을지 정하지 못하는 겁니다. 시스템 문제로 보이던 게 실은 판단 문제였습니다.
한 가지는 정직하게 밝히겠습니다. "고객별·SKU별 손익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업이 몇 %인가"를 직접 물은 2026년 조사는 찾지 못했습니다. 딜로이트, EY, 가트너, PwC 어디에도 그 형태의 통계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세 개의 우회 지표를 놓습니다.
① 판매수량·인원수·마케팅비 같은 운영 드라이버를 재무예측에 완전히 통합한 조직은 34%였습니다(Vena Solutions, 재무담당자 431명, 2026년 6월 발표 · 조사는 2025년 10월). ② 민첩한 의사결정에 필요한 고급 분석 도구를 갖췄다는 재무조직은 18%에 그쳤습니다(Wolters Kluwer, 20개국 1,672명, 2026년 3월). ③ AI를 쓰면서 가장 걱정하는 항목 1위가 원가 불확실성과 투명성 부족으로 46%였습니다(딜로이트 CFO Signals 2Q 2026, 2026년 7월).
세 숫자가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총액은 다들 압니다. 쪼갠 숫자가 없을 뿐입니다.
SAP·NetSuite·Anaplan·더존이 2026년에 실제로 내놓은 수익성 기능
▍발표된 기능과 돌아가는 기능은 다릅니다
네 곳을 같은 세 가지 잣대로 놓고 봤습니다. 무엇을 넣었나, 실제로 쓰나, 숫자가 있나.
SAP. 제품·고객·채널별 수익성을 전표 전기 시점에 붙이는 Margin Analysis는 원래 S/4HANA의 표준 구조입니다. 2026년에 새로 얹힌 건 그 위의 에이전트 계층으로, Autonomous Finance 어시스턴트 7종이 2분기부터 순차 GA에 들어갔습니다. 실사용은 어떨까요. 2분기 실적 콜(2026년 7월 23일)에서 밝힌 Joule Work 사용자 4,000명은 SAP 내부 직원이었고, 신규 플랫폼은 수백 개 고객이 베타 중인 단계였습니다. UpperEdge는 5월 21일 보고서에서 SAP Business AI를 프로덕션에서 돌리는 고객은 극소수라고 적었습니다. 숫자 자체는 좋습니다. 2분기 클라우드 매출 62억 8,100만 유로(+22%), 다만 non-IFRS 영업이익률은 27.8%로 0.7%p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S/4HANA로 옮겨야 시작된다는 것. 가트너 집계 기준 2024년 말까지 이전을 마친 ECC 고객은 39%였습니다(2025년 6월 보도 기준).
Oracle NetSuite. 이번 조사에서 원가배부에 가장 직접적으로 손을 댄 곳입니다. 2026.1 릴리스의 Profitability and Cost Management에 두 개의 어시스턴트가 붙었습니다. Model Build Assistant는 사용자의 말을 받아 배부 모델과 룰을 만들고, Allocation Trace Assistant는 원가가 조직 안에서 어떤 경로로 흘러갔는지 자연어로 설명합니다. 배부를 자동화한 게 아니라, 배부 규칙을 세우고 추적하는 일을 거들겠다는 설계입니다. 고객은 220개국 43,000곳(2026년 2월 11일 공식 발표). 다만 이 모듈을 실제로 켠 고객이 몇 곳인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NetSuite 매출은 FY2026 3분기 11억 달러(+14%)로 연환산 44억 달러 규모입니다.
Anaplan. 2026년 3월 25일 목적특화 앱 12종을 내면서 이름부터 Profitability Analysis인 앱을 올렸습니다. 원가·수익·성과에 대한 실시간 투명성을 유연한 모델로 제공한다는 설명이고, 재무 목표와 공급망 계획을 맞물리는 Consensus Margin Planning도 함께 나왔습니다. 2,600개 이상 브랜드가 쓴다고 밝혔지만, 이 앱 단위의 도입 고객 수는 없습니다. 매출·ARR·성장률도 전부 미공개입니다. 2022년 상장폐지 이후 재무 수치를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확인 불가는 확인 불가로 적어둡니다.
더존비즈온. 2025년 연간 매출 4,463억 원(+10.9%), 영업이익 1,277억 원(+45.0%)으로 역대 최대를 냈습니다(2026년 2월 4일). ONE AI를 Amaranth 10과 WEHAGO에 내재화하는 방향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SKU별·고객별 실시간 손익이나 원가배부 자동화를 명시한 2026년 기능 스펙은 찾지 못했습니다. 공개된 데모는 회계·재무데이터 분석 수준까지였습니다. 고객 2,000곳이라는 숫자도 2024년 12월 시점이라 지금 값이 아닙니다.
▍AI-native 진영은 이 문제를 아직 안 건드립니다
Basis는 2026년 2월 1억 달러를 조달하며 11억 5,000만 달러 밸류를 받았고, 미국 상위 25개 회계법인의 약 30%를 고객으로 확보했습니다. Digits는 4월에 무접촉 자동화율 95% 이상을 달성한 고객에 대해서만 과금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대담한 조건입니다.
그런데 이 진영 어디에서도 per-SKU, per-customer 마진을 다루는 2026년 1차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들의 서사는 결산 자동화와 GL이지 단위경제가 아닙니다. 가장 빠른 회계 자동화 진영이 가장 늦게 오는 영역이 여기입니다.
제조원가계산은 이미 100년 된 단위경제 계산기다
▍커머스와 SaaS는 그 장부를 안 배웠을 뿐입니다
제가 통상 실무로 11개국을 다닐 때, 원산지 판정은 늘 단위로 내려가는 일이었습니다. 완성품 하나에 들어간 부품의 출처와 금액을 쪼개지 못하면 특혜관세를 못 받습니다. 제조 현장은 더 노골적입니다. 표준원가를 세우고, 배부기준을 정하고, 기말에 원가차이를 뜯어 어디서 새는지 찾습니다. 직접비와 간접비를 가르고, 조업도차이와 능률차이를 나누는 그 지루한 작업이 정확히 단위경제 계산입니다.
커머스와 SaaS가 지금 단위경제라는 이름으로 새로 발명하고 있는 것은, 제조원가계산이 100년 동안 해온 일입니다.
차이는 하나뿐입니다. 제조업은 원가계산준칙과 배부기준을 문서로 갖고 있고, 커머스·SaaS는 그걸 안 만든 채 대시보드부터 샀습니다. 쿠팡 수수료, 광고비, 반품 물류비, 고객지원 인건비를 주문 한 건에 어떻게 붙일지 정한 문서가 없으면, 어떤 BI 도구를 붙여도 나오는 건 총액입니다.
가트너도 같은 자리를 짚습니다. AI·기술 투자를 전략적으로 배치한 CFO가 2029년까지 마진 10%p를 더 확보할 수 있다고 보면서, 그 수단으로 제품·고객·채널 3축 수익성 분석을 제시했습니다(2026년 4월 28일).
실시간 단위경제를 만들기 위해 재무팀이 먼저 확정할 것
▍순서를 뒤집으면 도구값만 나갑니다
① 배부 규칙을 문서로 먼저 확정하세요. 공통비 항목별로 배부기준(매출액·수량·건수·시간·중량)과 배부 주기를 적은 한 장을 만듭니다. 이건 IT 과제가 아니라 회계 판단이고, 회계사가 쓰는 게 맞습니다. ② 전표에 단위 축을 심으세요. 계정과목만으로는 절대 안 나옵니다. 주문번호·SKU·고객코드·채널을 전표 라인에 태그로 붙여야 사후 집계가 가능해집니다. 기존 ERP에서도 보조원장·프로젝트코드·세그먼트로 대개 열립니다. ③ 세 개만 골라 시작하세요. 전 품목 전 고객을 한 번에 하려다 대부분 멈춥니다. 매출 상위 3개 SKU, 거래액 상위 3개 고객, 채널 3개. 여기서 배부 규칙이 견디는지 먼저 확인합니다. ④ 정확도보다 갱신 주기를 먼저 잡으세요. 월 1회 정밀한 원가보다, 주 1회 대략 맞는 단위손익이 가격 결정에 쓰입니다. 오차 3%를 줄이려고 2주를 쓰면 그 숫자는 이미 지난 숫자입니다. ⑤ 적자 SKU를 찾았을 때 누가 무엇을 하는지 미리 정하세요. 단가 인상, 최소주문수량 조정, 단종. 이 결정권이 없으면 리포트만 쌓입니다.
가트너는 임베디드 AI를 탑재한 클라우드 ERP를 쓰는 재무조직이 2028년까지 결산을 30% 더 빠르게 마칠 것으로 봤습니다(2026년 2월 24일). 결산이 빨라지는 건 반갑습니다. 다만 열흘이 사흘이 돼도, 배부 규칙이 없으면 사흘 뒤에 손에 쥐는 것도 총액입니다.
이 접근의 솔직한 한계
▍배부는 끝내 판단이고, 판단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배부기준을 바꾸면 어제 흑자였던 제품이 오늘 적자가 됩니다. 그래서 단위손익은 절대값으로 다루면 위험합니다. 같은 기준으로 계속 재는 상대 비교, 추세, 순위로 쓰는 게 맞습니다.
두 번째. 실시간이라는 말이 과장될 때가 많습니다. 매입 세금계산서가 다음 달에 들어오는 구조에서 원가는 후행합니다. 추정치로 채우고 확정 시 조정하는 이중 트랙을 감당할 수 있는지 먼저 봐야 합니다. 감당 못 하면 주간 확정치가 낫습니다.
세 번째. AI가 배부 규칙을 대신 정해주지는 않습니다. NetSuite의 어시스턴트도 사용자의 의도를 모델로 옮기고 흐름을 설명하는 역할입니다. 무엇을 어디에 붙일지는 여전히 사람이 답합니다. 원가관리 감독 책임이 재무부서에 있다고 답한 CFO가 68%였다는 딜로이트 조사가 그 자리를 정확히 말해줍니다.
한국은행 집계로 지난해 외부감사대상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6.2%로 올랐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빼면 4.9%로 전년과 같았습니다.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기업 비중은 39.9%로 2013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습니다(2026년 6월 10일). 평균이 가리는 분포가 이만큼입니다. 회사 안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단위경제를 실시간으로 잡는 일은 결국 계정과목 체계와 전표 설계를 다시 그리는 일이고, 그건 ERP의 자리입니다. 이 관점에서 AI ERP 진영 전체를 기능·실사용·매출로 뜯어본 글은 AI ERP 현황 2026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Gridie는 회계사가 설계한 AI-native ERP입니다.
자주 받는 질문
Q. 단위경제(unit economics)는 정확히 무엇을 말하나요?
A. 사업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 하나에서 얼마가 남는지를 보는 계산입니다. 커머스는 주문 한 건 또는 SKU 하나, SaaS는 고객 한 명, 제조는 제품 한 단위가 그 단위입니다. 매출에서 그 단위에 직접 귀속되는 변동비와 배부된 공통비를 빼서 공헌이익을 구합니다. 회사 전체 손익계산서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숫자이고, 가격 결정과 단종 판단은 이 숫자 위에서 이뤄집니다.
Q. 실시간 수익성 분석을 하려면 ERP부터 교체해야 하나요?
A. 아닙니다. 대부분의 기존 ERP에도 보조원장, 프로젝트코드, 세그먼트, 부문 같은 단위 축이 이미 열려 있습니다. 문제는 그 축을 안 쓰고 계정과목만 채워온 관행입니다. 교체를 검토하기 전에, 현재 전표에 주문번호와 SKU를 태그로 붙일 자리가 있는지부터 확인하십시오. 그 자리가 없고 커스터마이징 비용이 교체 비용에 근접할 때가 교체를 논할 시점입니다.
Q. 공통비는 어떤 기준으로 배부해야 하나요?
A. 그 비용을 발생시킨 활동에 가장 가까운 기준을 씁니다. 물류비는 중량이나 부피, 고객지원비는 문의 건수, 마케팅비는 채널별 직접 집행액, 창고비는 점유 면적과 회전율입니다. 매출액 비례 배부는 만들기 쉽지만 큰 제품에 비용을 몰아주기 때문에 저가·소량 제품의 적자를 가립니다. 기준을 정했으면 최소 두 분기는 바꾸지 말고 유지해야 추세가 읽힙니다.
Q. AI가 원가배부를 자동으로 해줄 수 있나요?
A. 배부 실행과 추적은 이미 자동화 영역에 들어왔습니다. NetSuite는 2026.1 릴리스에서 배부 모델을 자연어로 생성하는 Model Build Assistant와 원가 흐름을 설명하는 Allocation Trace Assistant를 내놨습니다. 다만 어떤 비용을 어떤 기준으로 누구에게 붙일지 정하는 일은 회계 판단이고, 2026년 현재 어떤 제품도 이걸 대신 결정해 주지 않습니다. AI는 정한 규칙을 지치지 않고 매일 돌리는 쪽에서 값을 냅니다.
지난달 우리 회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 가장 많이 남긴 제품이었는지 지금 답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