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실, 우리는 피벗 테이블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들어가며
전 세계에 있는 엑셀 사용자는 11억 명이라고 합니다. 회계 담당자도, 마케터도, 스타트업 대표도, 심지어 개발자도 데이터를 다룰 땐 결국 엑셀로 돌아옵니다. 누군가는 엑셀 고수라는 이유로 채용되고, 누군가는 VLOOKUP을 몰라서 야근을 합니다. 1985년에 처음 등장한 도구가 4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업무의 중심에 있다는 건, 그 자체로 경이로운 일입니다.
오늘은 엑셀의 탄생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과거로 먼저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인터페이스의 역사, 그리고 엑셀
컴퓨터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인간은 기계의 언어를 배워야 했습니다. 명령줄 인터페이스(CLI). 정확한 문법으로 타이핑하지 않으면 컴퓨터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세기 중후반, GUI가 등장했습니다. 마우스로 클릭하고, 창을 드래그하고, 파일을 폴더에 넣는 세계. 이것은 단순한 편의 개선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컴퓨터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바뀐 것이었습니다. 기계의 문법을 외워야 했던 시대에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직접 조작하는 시대로.
엑셀은 이 흐름이 데이터 영역으로 확장된 결과입니다. 데이터 조작을 인간 친화적으로 만들었죠. 행과 열은 인간의 눈이 데이터를 읽는 방식에 맞게, 수식은 인간이 계산 로직을 직접 정의할 수 있도록, 리본 메뉴와 피벗 테이블은 복잡한 조작을 클릭 몇 번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엑셀의 모든 기능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있었습니다. 인간이 데이터를 더 쉽게, 더 많이 직접 다룰 수 있게 하는 것이었죠.
엑셀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닙니다.
40년이 지나 엑셀이 표준이 된 지금, 우리는 엑셀이라는 GUI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 실력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피벗 테이블을 만들고, 매크로를 작성하는 것을 학원에서 가르치고, 면접에서 물어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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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매출이 지난달보다 얼마나 늘었는지 알고 싶었고, 어느 지역의 실적이 부진한지 파악하고 싶었고, 수백 명의 지원자 중에서 조건에 맞는 사람을 추려내고 싶었습니다. 피벗 테이블은 그 목적을 위해 인간이 직접 수행해야 했던 조작의 산물이었습니다.
VLOOKUP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표를 연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고, 인간이 그 연결을 직접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함수가 필요했습니다.
엑셀의 모든 기능은 인간을 위해 존재합니다. 인간의 조작을 더 쉽게 만들수록, 더 많은 조작을 인간에게 요구하게 되죠. 하지만 당신이 직접 데이터를 하나하나 만질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기능은 거기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즉, 엑셀은 하나의 대전제 위에 존재합니다. 데이터를 다루는 주체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 그 전제가 지금, 40년만에 무너지고 있습니다.
전제의 붕괴
ChatGPT는 등장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검색의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키워드 기반으로 검색하는 걸 당연히 여겼던 사람들은 어느새 문장형으로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Cursor와 Claude Code의 등장 이후, 프로그래밍 과정의 대부분은 AI에게 넘어갔습니다. 더 이상 문법을 공부하고, 오류 메시지를 구글에 찾아볼 일이 없어졌죠.
엑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는 데이터를 정리하고, 해석하고, 패턴에서 의미를 추출하는 일을 인간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피벗을 어떤 기준으로 돌릴지, 어느 열을 기준으로 정렬할지, 어떤 수식을 써야 원하는 값이 나오는지 — 이 모든 판단이 인간의 몫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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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 AI가 그 판단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갖췄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자동화와는 다른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자동화는 인간이 설계한 규칙을 반복 실행하는 것입니다. 매크로가 그랬고, 스크립트가 그랬습니다. 규칙은 여전히 인간이 만들었고, 판단도 인간이 먼저 내렸습니다.
AI는 다릅니다. 정해진 규칙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스스로 만듭니다. "지난 분기 대비 성장률이 가장 높은 카테고리를 찾아줘"라는 문장을 받으면, 어떤 열이 분기 데이터인지, 어떻게 비교해야 하는지, 어떤 형태로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지를 스스로 판단합니다. 인간이 피벗의 기준을 설계하지 않아도 됩니다. VLOOKUP의 문법을 알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AI도 엑셀 위에서 동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도구들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고, 저희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합니다.
AI가 엑셀을 사용할 때, 엑셀의 어떤 부분이 실제로 필요한가요?
수식? AI는 엑셀이 정의한 함수보다 더 유연한
코드를 자유자재로 작성합니다.피벗 테이블? AI는 피벗 없이도 원하는 부분만 요약하고, 결론만 보여줍니다.
조건부 서식? AI는 색칠하지 않아도 데이터를 정렬하고 흐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결국 AI가 엑셀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데이터 그 자체뿐입니다. 나머지는, 인간이 데이터를 다루기 위해 설계된 인터페이스의 잔재입니다.
이것이 전제의 붕괴입니다. 엑셀은 인간이 데이터를 다루어야 한다는 전제 위에 설계되었습니다. 그 전제가 흔들리면, 엑셀 위에 쌓인 모든 기능들의 존재 이유가 함께 흔들립니다.
새로운 시대의 데이터 인터페이스
엑셀이 내일 당장 사라지진 않습니다. 그리고 사라져야 한다는 말이 엑셀이 나쁘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엑셀은 너무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 인간이 데이터를 직접 다뤄야 했던 시대를 너무 완벽하게 해결해버렸기 때문에 — 그 시대가 끝나갈 때 가장 먼저 물음표를 받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인터페이스는 항상 시대와 함께 교체되어 왔습니다. CLI에서 GUI로. 기계의 언어를 인간이 배우던 시대에서, 기계가 인간의 방식에 맞춰지는 시대로. 그 교체는 늘 이전 인터페이스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것이 해결하려 했던 문제를 더 근본적인 방식으로 다시 푼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다음 교체의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다음 인터페이스는 행과 열이 아니라 언어일 것입니다. 수식이 아니라 의도일 것입니다. 피벗 테이블을 어떻게 설정할지 고민하는 대신, 무엇을 알고 싶은지를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 세계.
그리디는 엑셀을 없애려는 게 아닙니다. 정확히는, 엑셀이 해결하려 했던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풀려고 합니다. 엑셀이 답하려 했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데이터로부터 의미를 얻을 수 있는가?
그 질문에 엑셀은 탁월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행과 열, 수식, 피벗 테이블. 인간이 데이터를 직접 다룰 수 있는 가장 정교한 인터페이스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40년 동안 유효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질문에 새로운 답을 낼 방법이 생겼습니다. 이제 인간이 데이터를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의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생겼습니다.
그리디는 그 새로운 답을 찾는 과정입니다. 스프레드시트라는 익숙한 형태에서 시작하되, 데이터를 다루는 주체를 인간에서 AI로 점진적으로 넘기는 것. 수식을 몰라도 되고, 피벗의 기준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어느 셀을 수정해야 할지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 사람은 무엇을 알고 싶은지만 말하면 됩니다.
물론 아직 당장은 엑셀이 필요합니다. AI가 모든 맥락을 이해하고 모든 판단을 대신하기까지, 인간의 눈과 손이 개입해야 하는 순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과도기는 실재합니다. 저희는 그 과도기를 가장 선두에서 이끌어 갑니다.
피벗 테이블은 훌륭했습니다. 이제 저희는 피벗 테이블이 필요 없는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