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AI 에이전트 OS: 업무를 채널로 나누고 활용 수준을 올려 세무검토까지 폰으로
미팅 자리에서 세법 질문을 받을 때가 제일 아쉽습니다.
답의 방향은 대개 그 자리에서 섭니다. 그런데 조문을 확인하고 근거를 붙이는 일은 사무실 컴퓨터 앞에서만 됩니다. 결국 "확인해서 드리겠습니다"로 끝나고, 그날 저녁에 다시 앉습니다.
에이전트에게 모자란 건 능력이 아니라, 제가 그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순서를 이렇게 잡았습니다. 어디서나 닿게 만들고, 일별로 나누고, 방마다 깊이를 올린다.
1단계 — AI 에이전트를 어디서나 부를 수 있게 만든다
▍기기는 세 대인데, 접점은 하나여야 합니다
올해 3월 리서치 프리뷰로 나온 Claude Code Channels를 씁니다. 집 노트북에서 도는 세션에 디스코드로 말을 거는 구조입니다. 폰은 입력, 노트북은 실행, 데스크톱은 편집. 접점은 GitHub 하나뿐이고 턴이 끝날 때마다 훅이 커밋과 push를 합니다. 지하철에서 시킨 일이 집에 오면 이미 데스크톱 폴더에 있습니다.
여기서 한 번 넘어졌습니다. 처음엔 메시지 앞에 마침표를 찍어야 반응하게 만들었다가 하루 쓰고 걷어냈습니다. 매번 점을 붙이는 일이 마찰이었고, 그 마찰이 앞선 시도를 죽인 원인이었습니다. 작년에 깔아둔 다른 에이전트 프레임워크가 노트북에 남아 있는데, 설정 파일 마지막 수정일이 6월 21일입니다.
어디서나 쓸 수 있다는 건 접속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말을 거는 데 아무 준비가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2단계 — 일별로 나눈다. 채널 분류는 계정과목을 짜는 일과 같다
▍폰에서 쓰려면 입력이 짧아야 하고, 짧으려면 방이 이미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첫 채널 구성은 페르소나였습니다. 회사, 회계사, 자문, 개인. 한 주를 못 갔습니다. 회계사 폴더를 열어보니 안에 강의, 집필, 커뮤니티 운영, 고객 장부, 대시보드가 같이 있었습니다. 방 하나에 기능이 다섯 개였습니다.
그래서 축을 바꿨습니다. 누구로서 하는 일이냐가 아니라 무슨 일이냐로. 계정과목의 제1원칙은 누가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냐로 나누는 것입니다. 채널도 정확히 같았습니다. 대표이사가 쓴 카드값이라고 대표이사 계정에 넣지 않습니다. 접대냐 소모품이냐로 넣습니다. 텔레그램도 붙지만 디스코드를 고른 건 방을 몇 개 파든 공짜여서입니다.
분류가 데스크톱에서는 취향입니다. 폰에서는 조건입니다. 화면이 작으니 긴 지시를 쓸 수 없고, 짧게 쓰려면 그 방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이미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방이 없으면 매번 맥락부터 깔아야 하고, 그러면 결국 앉아서 하게 됩니다.
3단계 — 방마다 활용 수준을 올린다
▍같은 채널에서도 시킬 수 있는 일의 층이 올라갑니다
방을 나눈 다음부터는 채널별로 깊이가 갈립니다. 제 경우 세 층으로 정리됐습니다.
① 조회층. 물어보고 답을 받습니다. 방만 나눠져 있으면 첫날부터 됩니다. "지난달 카드 승인 중 미분류 몇 건" 같은 것.
② 절차층. 반복되고 틀리면 안 되는 일을 스킬로 굳힙니다. 스킬은 마크다운 한 장이 아니라 폴더입니다. 절차, 계산 스크립트, 검증 체크, 예외 기록. 결산, 인세, 원천세, 리스회계, 회계감사. 매달 같은 절차로 돌고 1원이 어긋나면 안 되는 일들입니다.
③ 판단층. 근거를 직접 물어다 주는 단계입니다. 여기부터는 답이 아니라 답의 출처가 산출물입니다.
층이 올라갈수록 폰에서 되는 일이 늘어납니다. 조회층은 답을 읽고 제가 판단해야 하니 결국 앉아야 합니다. 판단층은 근거까지 붙어 오니 그 자리에서 쓸 수 있습니다. 모바일에서 쓸 수 있느냐는 화면 크기 문제가 아니라 산출물의 완성도 문제였습니다.
4단계 — 그래서 세무검토를 폰으로
▍근거를 못 찾으면 "확인 불가"로 남기는 규칙이 먼저입니다
가장 먼저 판단층으로 올리고 싶었던 게 세무검토였습니다. 이동 중에 제일 자주 필요하고, 제일 자주 미뤄지는 일이라서요.
지금 그 방의 스킬은 이렇게 돕니다. 질문을 받으면 법제처 법령 원문을 1차 근거로 조사하고, 예규와 웹 자료로 교차검증한 뒤, 근거 조문이 달린 회신 초안을 파일로 떨굽니다. 핵심은 마지막 규칙입니다. 근거를 못 찾으면 지어내지 않고 "확인 불가"로 표기합니다. 이 한 줄이 없으면 폰에서는 못 씁니다. 앉아서 검증할 수 없는 자리에서 그럴듯한 답을 받는 건 없느니만 못하니까요.
그래서 미팅 자리에서 질문을 받으면 그 채널에 한 줄 적습니다. 집 노트북이 조문을 뒤지고, 회신 초안이 저장소에 쌓이고, 폰으로 근거 조문까지 확인합니다. 저녁에 다시 앉는 대신 저녁에는 검수만 합니다.
하다 보니 개인용 AI 에이전트 OS였습니다
▍부품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몇 주 굴리고 나서야 이름이 붙었습니다. 도구를 여러 개 쓰고 있던 게 아니라, 제 일에 맞춘 운영체제를 하나 조립하고 있었습니다.
| OS 부품 |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 |
|---|---|
| 커널 | 노트북 상시 세션 |
| 셸·명령어 | 스킬 16개 |
| 파일 규약 | 설계는 문서, 규약은 CLAUDE.md, 할 일은 Notion, 지식은 Obsidian |
| 권한 | 자동·승인·차단 3층 |
| 프로세스 간 통신 | GitHub |
| 스케줄러 | cron 루틴과 새벽 재시작 |
| 인터럽트 | 디스코드 채널 |
그러면 이런 질문이 따라옵니다. 이걸 짜기 전에 내 일을 AI로 전부 한 번씩 돌려봐야 하나.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준비가 길수록 안 켜게 되고, 안 켜진 시스템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전부 돌려보는 일은 이미 조회층입니다. 방만 나눠져 있으면 첫날부터 저절로 일어납니다.
제가 한 건 재고조사였습니다. 2주 동안 손댄 파일을 세고, 할 일 64건을 역할별로 세고, 거기서 방을 잘랐습니다. 그런데 재고조사가 답을 주는 자리와 판단이 필요한 자리는 갈리더군요. 법인행정 채널은 실측에서 거의 0건이었는데 남겼습니다. 빌링과 정산이 예정돼 있어서요. 과거 데이터로 미래 빈도를 판정하면 안 됩니다.
빈 칸도 같은 눈으로 보면 선명합니다. 커널이 하나라 노트북이 꺼지면 전부 멈춥니다. 셸 명령어는 열여섯 개 중 아홉 개가 한 채널에 몰려 있고 세 채널은 0개입니다. 판단층은 아직 세법자문 하나뿐이고요. 상시 세션은 컨텍스트가 압축돼 오늘 결론이 다음 주엔 흐려집니다. 그래서 결론은 파일로 떨어뜨립니다.
순서를 거꾸로 하면 안 됩니다. 분류 없이 기기만 늘리면 세 대에서 똑같이 헤매고, 활용 수준부터 올리려 들면 정작 필요한 자리에서 못 꺼냅니다. 지금 폰을 꺼내서 그 자리에서 시킬 수 있는 일이, 그중 몇 개입니까?
자주 받는 질문
Q. 폰으로 AI에게 일을 시키려면 클라우드 서비스를 써야 하지 않나요?
A. 아닙니다. 세션은 내 컴퓨터에서 돌고 디스코드는 입력창 역할만 합니다. 장부도 계약서도 그 컴퓨터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데이터가 어디까지 나가는지 답할 수 있어야 하는 재무·세무 업무에서는 클라우드 IDE보다 이쪽이 설명하기 쉽습니다.
Q. 세무 판단을 AI에 맡겨도 되나요?
A. 판단을 맡기는 게 아니라 근거를 모으는 일을 맡깁니다. 산출물이 답 한 줄이면 못 씁니다. 조문 번호와 원문, 교차검증한 예규, 그리고 못 찾은 항목의 "확인 불가" 표시까지 나와야 사람이 검토할 수 있습니다. 최종 회신은 사람이 확정합니다.
Q.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A. 채널 하나입니다. 이동 중에 가장 자주 아쉬웠던 업무를 하나 골라 그 방을 먼저 만드세요. 다음 스킬 후보를 고를 때도 전수 조사보다 "폰에서 아쉬웠던 순간"을 한 주 적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 목록에는 빈도와 아쉬움의 크기가 이미 가중돼 있습니다.